임현수 목사 칼럼

밥상공동체

‘식구(食口)’라는 단어는 밥을 함께 먹는 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밥상에 앉아 같은 음식을 나누는 사람을 가족이라 불렀습니다.

밥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기쁨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 있는 거룩한 즐거움입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 낙을 보는 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인 줄도 알았도다.” (전도서 3:13)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을 감사로 받고,함께 나누며,그 자리에서 웃음과 사랑이 피어날 때 … 그 밥상이 바로 천국의 예표가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밥상에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사도행전과 예수님의 밥상 공동체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목회는 먹회를 잘하는 곳이라는 조크도 있습니다.

밥상은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곳에는 관계가 자라고, 마음이 열리고, 신앙이 흘러가는 은혜의 장이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시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사랑을 나누신 자리는 언제나 ‘식탁’이었습니다.

밥상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떡을 뗀다”는 표현은 단순한 식사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성만찬의 기억이자, 하루하루의 나눔의 삶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은 ‘성전’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예배드린 후 집으로 돌아와 함께 음식을 나누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밥상은 그들의 신앙이 실제 삶으로 흘러가는 통로였습니다.

밥상에서 그들은 말씀을 되새기고, 서로의 아픔을 듣고,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이 공동체의 식탁은 단순한 친교가 아니라, 복음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현장이었습니다.

그들의 밥상은 세상의 질서와 달랐습니다.

누가 더 가진 자인지, 누가 더 중요한 자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을 서로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으며, 가난한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행 4:32–35).

이것이 바로 복음의 경제이며, 밥상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질서였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6장에서는 구제의 불공평 문제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헬라파 과부들이 식탁에서 소외된 것입니다. 사도들은 말씀 사역과 더불어 식탁의 공평함을 지키기 위해 일곱 집사를 세웠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밥상은 정의의 자리이며, 하나님의 공평이 실현되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밥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불평과 나눔의 불균형은 결국 공동체 전체의 건강을 흔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단순한 나눔을 넘어 질서 있는 사랑의 구조를 세웠습니다.

그 결과 말씀은 더욱 왕성해졌고, 공동체는 더 깊은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밥상 공동체 —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여러 자리에서 밥을 드셨습니다. 그 식탁마다 복음의 핵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먼저, 세리와 죄인들의 식탁입니다(막 2:15–17).

레위의 집에서 예수님은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를 비난했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의 식탁은 경계를 허무는 식탁, 배제된 자들을 초대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분은 식탁에서 사람을 새롭게 하셨고, 사랑으로 관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다음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의 식탁을 봅니다(막 6:30–4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십니다.

그 한마디는 책임의 위임이자 섬김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작은 도시락 하나가 감사의 기도로 주님의 손에 들려질 때, 그것은 풍성한 잔치로 변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떼어 나누라”고 명하셨고, 그들은 분배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다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의 식탁은 (감사–나눔–남음)의 순환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보여준 자리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최후의 만찬의 식탁입니다(눅 22:14–20).

예수님은 떡과 잔을 들어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요,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 

하시면서 그분은 식탁에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후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떡을 떼실 때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눅 24:30–35).

예배당의 설교에서 들었던 말씀이 식탁에서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식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임재의 자리이자 언약의 기억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말씀의 공동체이자 밥상의 공동체였습니다.

성전의 예배가 집의 식탁으로 이어졌고, 식탁의 나눔이 세상 속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들의 밥상에는 사랑과 공평, 기쁨과 감사,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밥상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종종 바쁜 일상 속에서 밥을 ‘함께’ 먹는 일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밥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정의 식탁, 소그룹의 만남, 교회 공동식사…소소한 잔치들….

그 어떤 자리도 하나님께서 임하실 수 있는 작은 성소가 될 수 있습니다.

밥상에서 서로의 삶을 듣고, 눈을 맞추며, 한 그릇의 음식을 나눌 때, 그곳에서 은혜가 순환하고 사랑이 실현됩니다.

복음은 거창한 말보다, 밥상에서 흘러나오는 미소와 손길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밥상을 회복할 때, 교회는 다시 살아납니다.

가정의 식탁이 회복될 때, 믿음의 전승이 일어나고, 세상의 밥상 위에 다시 하나님 나라가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밥상에서 죄인을 용납하셨고, 초대교회는 밥상에서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 식탁에는 구제와 정의, 감사와 기쁨, 사랑과 언약이 함께 있었습니다.

밥상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먼저 초대하고, 먼저 대접하고, 먼저 사랑을 베풀 때

우리의 밥상은 세상을 살리는 자리로 변합니다.

그곳에서 사람은 회복되고, 복음은 전해지고, 하나님의 은혜는 흘러갑니다.

밥상에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

그것이 오늘 우리의 신앙이 다시 서야 할 자리입니다.

묵상 성경 구절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 2장 42절)

“주는 자가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행 20장 35절)

🙏 사랑의 하나님,

주님께서 밥상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떡을 떼시며 사랑을 나누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우리도 밥상에, 제가 먼저 초대하고, 먼저 인사하며, 먼저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식탁이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머무는 자리 되게 하시고,

감사와 나눔이 넘치는 거룩한 밥상이 되게 하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